Views 미국이 바라보는 일본의 전후책임

June 05, 2012

다치노 준지=立野純二∙아사히신문 아메리카 총국장

 그 비석은 미국 현지인들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 비석이 일약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바다 건너 일본의 항의 때문이었다.

허리 정도 높이의 화강암. 사방 약 60센티미터 동판에는 웅크리고 있는 여성에게 지시하는 병사의 뒷모습이 새겨져 있다. ‘일본군부에 납치된 20만 명 이상의 여성을 애도하다.’ 그것은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다.

뉴욕 교외의 뉴저지 주 팰리세이즈파크 시는 인구 2만 명의 절반 이상이 한국계 미국인이다. 주택가의 도서관 옆에 기림비가 세워진 것은 2010년 가을이었다. 주(州)의 한국계 시민단체가 제안한 기림비 설치 계획에 딱히 이렇다 할 반대도 없었다.

이탈리아계 제임스 로툰도 시장은 그전까지 위안부의 존재를 몰랐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 등 기존의 비석에, 전쟁의 비극을 전하는 비석을 하나 더 세우는 것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치를 비난할지라도 지금의 독일은 평화국가라고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듯이, 지금의 일본은 당시와는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일본 뉴욕총영사가 로툰도 시장을 방문했다. 일본의 벚나무 등 기증 안에 관해 얘기하면서 이 기림비가 미국과 일본의 우호증진에 방해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며칠 뒤, 자민당 국회의원 4명이 찾아와 기림비의 문구가 “사실과 다르다”며 철거를 요구했다. 논의는 진전이 없었고 시장은 철거를 거부했다.

‘위안부 기림비, 갈등심화’.

이렇게 보도한 것은 뉴욕 타임즈다. 뉴욕 타임즈 홈페이지의 이 기사에는 165개의 댓글이 달려있다. 그 중 90개는 시의 입장을 지지하는 내용으로 “전쟁책임을 은폐하려는 일본의 압력에 굴하지 말라”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미국과는 관계없는 일이다”는 등 기림비 철거를 요구하는 댓글은 9개에 불과했다.

팰리세이즈파크 시립도서관의 사서인 스티브 카발로 씨(56)는 미국 각지에서 다양한 역사학습회를 열고 있으며,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를 다룬 적도 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그 당시 조선인 당국자에 대한 여성들의 깊은 분노도 다루며 “역사는 일방적으로 악인을 결정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일로 상처를 받은 일본인이 있다면 유감이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둘러싼 대립에 대해 비영리 국제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이 2005년에 제안을 했다. 일본정부에게는 위안부 등의 전쟁피해자에게 공적 자금으로 보상을 촉구하고, 한국정부에게는 일본의 지원이 경제발전을 가져온 것을 인정하고 사의(謝意)를 표명하도록 권고했으나 실현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제안을 정리한 미국인 피터 벡 씨(現 아시아재단 한국대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 상대의 민족주의적 발언이나 행동에 과잉반응하고 있다. 양국 모두 감정론을 억제하는 정치적 지도력이 없기 때문에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전후(戰後)보상을 둘러싼 일본정부의 자세는 변함이 없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됐다는 것이다. 국제법상으로도 상식으로 여겨져 왔으나, 국제사법에 조예가 깊은 메이지(明治)대학의 오누마 야스아키(大沼保昭) 특임교수는 “이 법의 해석이 오래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최근 국제법의 노선은 인권보장을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흐름이 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 책임을 지는 국가와 인간의 대립구도가 있는 한 역사적 사실이나 해석론을 계속 내놔도 국제여론이 ‘약자 구제’의 편에 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아시아를 대표하는 인권국가를 자부한다면 일본의 존엄을 위해 전후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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