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을 말하는 대량의 유골, 넋도 달래지 못한 채 방치

August 20, 2012

서울/나카노 아키라=中野晃 특파원

 한국전쟁 때 한국군이나 경찰에 학살된 민간인의 유골이 대량으로 방치돼 있다. 국립위령공원 건설은 진행되지 않고 있으며 땅속에 묻힌 유골의 발굴도 중단된 상태다. 자국의 어두운 부분을 밝혀내는데 소극적인 보수성향인 이명박 정권의 자세가 그 배경에 있다.

총탄으로 구멍이 뚫린 두개골이나 총알이 박힌 채인 등뼈, 여성이나 어린이의 유골도 있다. 청주시에 있는 충북대학교의 연구동에는 총 1617구의 유골이 플라스틱 상자에 보관돼 있다. 박선주 교수가 이끄는 발굴조사단이 2007년부터 2009년에 걸쳐 한국의 10곳을 조사해 발견한 유골이다. “무차별하게 학살됐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는 박 교수.

진보성향이었던 故 노무현 대통령 정권 아래, 독재•군사정권 시절의 인권탄압 진상규명을 추진하는 정부기관이 발족했다. 한국전쟁에서 민간인이 학살된 사실은 오랫동안 방치돼 있었으나 노무현 정권에 와서 주목받아 국가 예산으로 희생자가 묻혀있을 가능성이 높은 약 40곳에서 발굴이 시작됐다.

발굴현장에서는 당시 한국군의 M1소총이나 경찰이 휴대했던 카빈소총의 총탄도 발견돼 국가권력에 의한 자국민 ‘대량학살’에 신빙성을 더해주었다. 여성의 머리끈이나 학생복의 단추, 안경 등 4천 점이 넘는 유품도 발견됐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이나 경찰, 우익세력에 의해 ‘북한의 협력자’로 간주된 수십만 명의 민중이 재판 없이 ‘처형’됐다고 한다. 고양시의 한 산의 정상 부근에 우물같이 깊은 구덩이가 있다. 1995년, 이곳에서 153구의 유골이 나왔다. 경찰이 총살한 마을 사람들의 것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17세였던 남성(78)의 부친은 연행된 채 돌아오지 않았다. 지역의 유지었던 부친은 북한에 점령당했을 때 인민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었다. “마을의 사정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임명됐다. 살기 위해서는 거절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구덩이에 시신이 쌓여있는 것을 알면서도 유족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초반까지 군사정권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유족들이 돈을 모아 시신을 수습할 수 있게 된 것은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이후이고 노무현 대통령 정권 아래 조사가 진행돼 겨우 ‘명백한 범죄행위’로 인정됐다.

지난 5월, 고양시가 포함된 경기도의회가 희생자 위령사업을 위한 조례안을 가결했다. 그러나 여당 쪽 지사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거부했다. 노무현 정권 아래 발굴조사를 진행한 정부기관도 이명박 정권하에서 해산했다.

이 기관의 간부를 지낸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보수세력은 희생자들을 아직도 ‘빨갱이’(공산주의자)라고 부른다. 군이나 경찰의 가해를 인정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작업은 보수정권하에서는 힘든 일이다”고 지적한다.

서울/나카노 아키라=中野晃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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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의 발굴현장. 유골이 나란히 늘어선 상태로 발견됐다. 정렬시킨 채 총살한 것으로 보인다.(박선주 교수 제공)

공주시의 발굴현장. 유골이 나란히 늘어선 상태로 발견됐다. 정렬시킨 채 총살한 것으로 보인다.(박선주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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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주시의 발굴현장. 유골이 나란히 늘어선 상태로 발견됐다. 정렬시킨 채 총살한 것으로 보인다.(박선주 교수 제공)
  • 유골을 들고 있는 박선주 교수.(나카노 아키라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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