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 원폭 투하 후 67년째 맞는 여름, 묻혀버린 어머니의 역사를 따라

August 03, 2012

시미즈 다이스케=淸水大輔

 핵 폐기를 염원하며 피폭 체험을 전할 때 그것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 원폭 투하 후 67번째 맞는 여름. 벽 너머에 대해 상상하며 눈앞의 현실과 마주했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어머니 변연옥 씨(76)와 살고 있는 김미미 씨(54)는 “몸 상태가 안 좋다고 말해온 어머니가 피폭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됐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자신도 알지 못했던 어머니의 과거를 일본의 한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히로시마 출신인 어머니는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1945년 8월, 절의 마당에서 강한 빛에 노출됐다. 집으로 도망가던 도중, 벗겨져 늘어진 등가죽을 질질 끌며 걷는 사람들을 봤다고.

불안과 공포가 미미 씨를 덮쳐왔다. “병이 유전되면 어쩌지….”

어머니가 피폭한 사실을 알게 된 후 대만, 영국에서 유학했다. 귀국 후에는 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쓰거나 무역관계 일을 하는 등 바쁘게 뛰어다녔다. 어머니가 피폭자라는 사실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여동생과 남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또한 더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는 1945년 가을, 부친과 다른 형제 4명과 함께 바다를 건너 부산으로 갔다. 그때 어선에서 자신이 조선사람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들었다. 자기 나라말을 되찾은 사람들 사이에서 ‘숟가락’이라는 단어밖에 몰랐던 어머니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쪽발이’라고 불렸다. 어머니는 15살에 뇌혈관장애의 후유증으로 부친을 잃었고, 20살에 생활고 때문에 결혼했다.

그 무렵부터 피부에 콩 만한 반점이 생기더니 보라색으로 변해갔다. 혈액질환이었다. 어머니는 시어머니에게 병을 갖고 있다고 욕을 듣고, 일본에 돌아가라고 핀잔을 들어야 했다. 이웃사람들은 “원폭 엄마”라며 비웃었다. 원폭이 투하됐기 때문에 빨리 ‘해방’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남편과는 결국 헤어졌다. 당시는 독재정권하였고 과거를 돌아볼 여유도 구원을 요청할 곳도 없었다. “피폭자를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곳이 이 나라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1975년에 피폭자 건강수첩을 취득했고, 2002년부터 2년간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부회장도 맡았다. 한국에 있는 피폭자에게도 일본의 피폭자와 같은 원조를 하도록 요구했다. 일본에 피폭자와 지원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미 씨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작년 여름, 자신과 같은 ‘피폭 2세’ 남성을 어머니에게서 소개받았다. 그의 권유로 야마구치(山口)현을 방문해 자신들이 겪은 일을 주변에 이야기하는 피폭자나 그 체험을 전하려는 피폭 2세들을 만났다. 한국은 아직 피폭자들이 자신들의 체험을 얘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런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데 자신도 한몫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인생은 파묻혀진 역사의 일부다.

“걸어온 그 길을 전부 기록해 책으로 남기자.”

부산 시내에서 취재한 한 피폭자 남성은 “나 하나가 체험을 얘기한들 무엇이 바뀌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피폭자들이 증언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려는 피폭 2세들과도 만났다. 피폭자의 모습과 말을 영상으로 남겨 전달하고자 하는 시민단체도 있었다.

한국사회는 피폭의 기억을 어떻게 전해 갈 것인가. 식민지 지배를 하고, 그 뒤에도 수수방관했던 일본에게 있어 남의 일은 아니다.

‘재한피폭자’(在韓被爆者)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일본이 패전한 후, 남한에 귀국한 피폭자 수는 약 2만 3천 명이다. 이들에게는 피폭자 건강수첩의 교부가 인정되지 않거나 건강관리수당이 지급되지 않기도 했다. 2008년에 한국 내에서도 수첩교부신청이 가능하게 됐으나 피폭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증인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도 많다. 의료비 한도가 정해져 있는 등 일본의 피폭자와 비교하면 대우에 차이가 있다.

시미즈 다이스케=淸水大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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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생활하는 시설에서 이야기하는 김미미 씨(오른쪽)와 어머니 변연옥 씨. 변 씨는 이곳이 한국 내에서 피폭경험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생활하는 시설에서 이야기하는 김미미 씨(오른쪽)와 어머니 변연옥 씨. 변 씨는 이곳이 한국 내에서 피폭경험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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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생활하는 시설에서 이야기하는 김미미 씨(오른쪽)와 어머니 변연옥 씨. 변 씨는 이곳이 한국 내에서 피폭경험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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