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보물) 정치학자 강상중③ 한국 체류 한 달, 자신의 내면에서 사회로 눈을 돌리다

August 08, 2012

미쓰기 가쓰미=三ツ木勝巳

 ―와세다대학교에 진학 결정, 도쿄에 올라오는데.

나중에 소속하게 되는 재일동포 단체인 한국문화연구회(한문연)에서 가입 권유가 있었으나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숙집에도 이런저런 사람이 드나들었고 한국에 대해 설명하거나 설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틀어박히려는 듯 그것들을 차단했다.

큰 전환기가 된 것은 대학교 3학년 여름, 삼촌의 초청으로 한 달간 한국에 갔을 때다. 가지고 있던 주간지에 김일성의 사진이 실렸다는 이유로 부산 공항에서 갑자기 사실상 구속됐다.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부탁했다. 삼촌은 전쟁 직후 혼란 속에서 일본인 아내와 자식을 남겨두고 한국에 귀국해 서울에서 변호사가 된 유력자였다.

―한국의 첫인상은.

가난도 그렇지만 그 당시의 한국과 일본은 사회적인 격차가 컸다. 거기에 머릿속에 자리 잡아 있던 어린 시절 풍경이 겹쳐졌다.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었다. 한국 체류가 막바지로 접어든 어느 날 저녁, 음식점 창을 통해 집으로 귀가하는 인파를 보고 있었다. 건물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그 광경은 일본과 똑같았다. 어디에서나 사람은 똑같이 살아간다. 왜 한 쪽은 부정하고 한 쪽은 긍정해야 하는가. 가슴속에 뭉쳐있던 어떤 종류의 감정이 풀어지는 듯했다. 내 안에서 부정적으로 처박아두었던 것을 조금씩 밖으로 밀어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귀국하고 나서는.

한문연의 문을 두드렸다. 친구나 선배에게 가르침을 받거나 의문을 던지다 보니 개인의 고민은 사회의 고민과 떼어낼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알게 됐다. 그러자 역사 속에서 부모님과 자신을 어떻게 자리매김시켜야 할지 알 수 있었고 좀 멋스럽게 표현하자면 나의 이야기가 생겼다. 자신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즉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째서 여기에 왔는지, 어떤 어릴 적 체험을 갖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자기 안에서 이야기가 싹 텄다. 부모님 이외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러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사회로 눈을 돌리게 됐다.

―사회에서 쓰는 이름을 나가노 데쓰오(永野鐵男)에서 강상중으로 바꿨는데.

변신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자신만을 바라보며 그 외의 모든 것과 전혀 관계를 갖지 않고 그러면서도 아무런 보람도 느낄 수 없는 듯한 상태에서 확실하게 무언가와 관계를 맺고 명백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인생으로의 변신이라고 할까.

―한문연에서의 활동은.

우선 시민사회에서 권익을 획득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일기본조약으로 법적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외국인등록증명서를 항상 휴대해야 한다는 의무나 몇 년 간격으로 지문날인을 해야 하는 등 정주의 권리는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한편,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 민주화운동을 지지해 성명문을 만들거나 집회를 여는 등 주일한국대사관에도 항의하러 갔었다.

미쓰기 가쓰미=三ツ木勝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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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빛나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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